지볶행 인문학 로드의 세 번째 주제는 카프카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다. 체코 프라하를 중심으로 활동한 현대 문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카프카는 ‘변신’이라는 작품을 쓰면서 소설을 쓰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신선함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개인사는 문학처럼 화려하지 않았으며 여러 번의 사랑 실패와 아버지와 심각한 갈등 관계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번 이야기는 카프카의 사랑과, 집필하면서 수 없이 방문했던 프라하의 사보이 카페에 대한 이야기다. 사보이 카페는 '지볶행'에서 9기 옥순이 꼭 가고 싶어했던 장소인데 그녀가 카페 방문을 집작한 이유는 이곳이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 지식인, 작가들이 방문하여 서로 교류하고 유럽 근대 문화를 만들어 냈던 명소이기 때문이다.
대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벌레를 죽인 사과
홍진호 : 어떤 문학 작품을 이해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하는 하는 일이 그 작가의 뒷조사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글을 썼을까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카프카의 변신을 보면 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나중에 결국 죽는다. 그런데 죽게 되는 이유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꽂혔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아버지가 죽인 것이고 하필이면 그 던진 물건이 성경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사과라는 사실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을 하게 만든다. 왜 하필 사과냐 종교적인 행위 아니냐 이렇게들 해석을 하는데 카프카의 삶을 들여다보면 아버지의 역할이 눈에 띈다.
자수성가하고 무서웠던 카프카의 아버지
홍진호 : 카프카의 아버지는 매우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소시민이었지만 풍족한 시민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다. 이렇게 정형화해서 얘기하는 걸 싫어하지만 카프카의 아버지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나 혼자의 힘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존감이 굉장히 강했다. 그것 때문에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그 강한 자존심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강한 남자가 되어라 강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교육을 했고 “너는 왜 그 모양이니”라며 카프카를 다그쳤고 거기다가 욕도 굉장히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카프카는 왜소한 체격에 삐쩍 말랐고 귀도 뾰족하고 뭔가 외계인같이 생겨서 병약한 듯한 인상을 준다. 굉장히 건장하고 센 남성이었던 아버지에게 카프카는 한 번도 대들지도 못했고 끊임없이 아버지와 내적으로는 갈등이 컸던 사이였다.
아버지에 대한 소심한 저항, 편지
홍진호 : 그 결과는 문학 작품인지 편지인지 구분하기 힘든 아버지에게 쓴다. 아버지가 들으라고 한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읽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문제가 카프카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겠구나라고 유추할 수 있다.
첫 번째 여성 펠리체 바우어
홍진호 : 펠리체 바우어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유대인이었다. 카프카 원고를 태우지 않고 출간했었던 막스 브로드라고 하는 친구네 집에서 카프카가 알게 된 여성이다. (카프카는 죽으면서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태울 것을 당부했지만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말을 따르지 않고 출간하여 현재 카프카 문학이 남아 있게 됨)
카프카는 이 여성과 사랑에 빠져서 약혼을 한다. 이 여성에게 매일 편지를 쓰는데 하루에 편지를 세 통도 썼다고 한다. 총 4년~5년를 연애를 했는데 500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 펠리체 바오와 결혼에 성공하지 못하고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왜냐하면 나치가 집권을 하게 되면서 유대인인 그녀는 점점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인데 나치가 최종적으로 권력을 획득하는 1933년이 되기 전인 1930년에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 후에도 카프카가 보낸 편지를 계속 간직을 했다. 좀 애틋한 이야기다. 카프카는 첫 번째 약혼녀였던 펠리차오 바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나는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카프카 입장에서 쓰기였다. 카프카의 자아는 쓰기에 있었다.
나는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진호 : 과연 내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시민적인 삶을 살게 되는 순간 내가 과연 글을 쓸 수 있을까? 카프카는 이런 고민을 했다. 카프카가 결혼이 늦춰지게 된 것도 이런 고민 때문이다. 결국엔 결혼을 못하고 약혼까지만 3번을 하게 된다.
두 번째 여성 율리 보리첵
홍진호 : 두 번째 여성 율리는 결혼 날짜까지 잡았다. 날짜를 잡고 프라하 시내에서 방을 구하러 다니는데 방이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는 산업혁명기고 노동자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인구는 늘고 집은 없던 시대였으니까 방을 구하지 못해서 결혼을 미루게 된다.
세 번째 여성 밀레나 예젠스카
홍진호 : 그 사이 밀레나 예젠스카라는 여자를 알게 되면서 또 파혼을 하게 된다. 밀레나라는 여성은 카프카의 작품을 처음으로 체코어로 번역한 여성이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그녀와 카프카는 뜨거운 사랑에 빠지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1년 안 돼서 헤어진다.
네 번째 여성 도라 디아만트
홍진호 : 네 번째 여성은 죽을 때 즈음에 만난 도라 디아만트라고 하는 독일 여성이었다. 그녀는 요양지에 가 있다가 알게 되는데 그녀는 죽을 때까지 카프카 곁을 지킨다. 카프카는 오스트리아 빈의 케어링이라고 하는 작은 요양 도시에서 죽는다. 당시 나이 40세였는데 조금만 더 건강해서 작품들을 더 넘겼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자기 작품이 성공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카프카의 카페 루브르와 사보이
이티나 : 카프카가 드나들던 카페가 프라하에 지금도 남아 있다. 루브르 카페는 1902년부터 현재까지 123년 동안 운영되고 있다. 그곳을 카프카도 자주 방문했다. 카프카만 아니고 아인슈타인이도 가 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 막스프롯이라는 카프카의 친구도 자주 방문했고 그 외 유명한 작가, 당시 지식인들이 모였던 장소다. 이곳은 쌀롱 같은 분위에서 커피만 마시는 것이 아니고 음식도 먹을 수 있다. 늦은 밤까지 계속 대화하면서 한번에 120명 정도가 그곳에 머물며 대화를 즐길 수 있었다.
홍진호: 그런 카페 문화는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왜 이렇게 카페에 사람들이 모이냐 하면 당시 집 값이 너무 비싸서 다들 좁은 집에 살았기 때문에 해만 뜨면 그냥 밖으로 튀어나와서 카페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카페에 가면 신문 잡지들이 쫙 배치되어 있는데 혼자서는 비싸서 다 사 볼 수 없는 신문과 잡지들을 무료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작가, 예술가, 평론가들이 카페에 모였다.
이티나: 카페 루브르만 유명한 곳 아니고 사보이라는 카페도 있다. 거기는 이미 130년 이상 계속 운영되고 있다. 카페 사보이도 유명한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였다. 작가, 화가, 지식인들이 자주 방문했던 장소다. 카페 루브르랑 비슷하게 커피, 음식, 주류 등 다양하게 시킬 수 있다. 나도 가본적이 있다. 한 번 커피를 시켰었는데 맛이 이상했다. 그래서 이거 문제가 있는건지 직원에게 새로운 커피를 다시 받았는데 물이 탄산수였다. 이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난다.
이성을 깨우는 커피
임동현 : 카페라는 장소가 유럽 근대 문화를 상징하는 장소다. 처음 커피가 보급됐을 때 술의 대체재 역할이 컸다. 술은 부작용이 있지만 커피는 오히려 각성 효과가 있어서 이성을 일깨우는 음료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래서 이미 계몽주의 시대부터 지식인들이 커피를 마시는 카페를 드나들었고 지식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된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카페의 기능은 말씀해 주신 것처럼 하나의 미디어 센터 기능을 하기도 했다. 커피는 상대적으로 쌌고 다른 사교의 장소들과 비교했을 때 예를 들면 오페라하우스나 전원의 별장은 평민들이 할 수 없는 사교 귀족들이나 가는 곳이지만 카에 간다든가 평민들은 할 수 없는 사교 활동이지만 카페는 계층과 상관없이 섞이는 곳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