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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5 (금)

[지볶행 인문학 로드] 카를교를 알면 체코의 역사가 보인다

제1강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

‘지볶행 인문학 로드’는 ‘지볶행’의 여행지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전문 지식을 알려주는 인문학 콘텐츠입니다. 전문가, 현지인으로 구성된 패널이 자유로운 대담 형식으로 다양한 분야의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하여 여행가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콘텐츠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콘텐츠는 촌장엔터테인먼트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담자 : 임동현 (전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홍진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공연예술학과 교수), 임동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이티나(체코인)

 

 

 

지볶행 인문학 로드의 첫번째 주제는 ‘지지고 볶는 여행’(이하 지볶행, 매주 금요일 밤 8시 40분 ENA,SBS플러스 방송 및 티빙)에서 수 없이 이야기 되었던 ‘카를교’이다. 카를교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관통하는 블타바 강을 동서로 연결하는 623년 전에 지어진 다리다. 이 다리는 ‘지볶행’ 22기 영수와 영숙이 2회차(3월 7일 방송) 중 다리 밑을 지나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조선 건국 초기 태종 시대와 같은 연대인 1402년에 완공된 다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견고하다.

 

4월 2일 오후 6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지볶행 인문학 로드’ 대담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지볶행 인문학 로드’의 첫 주제를 카를교로 잡고 카를교와 관련된 체코의 역사, 문화,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프라하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만들어진 카를교

임동현 교수: ‘카를교라는 이름은 이 다리를 건설했던 카를 4세에게서 따온 것인데, 카를 4세가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겸했다. 그런데 당시까지만 해도 프라하는 유럽에서 어떤 정치적인 중요성이나 문화적인 중요성이 그렇게 크지 않은 도시였다. 그래서 카를 4세가 프라하를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정하면서 수도의 위상에 걸맞게 도시를 대대적으로 개축하는 작업을 했고 그때 다양한 건물이 지어지는데 그중 하나가 카를교다. 카를 4세 황제 재위 기간 중 지어진 건물인데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보통 유럽에서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 도시 이름도 황제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있었다.

 

팰린드롬-앞뒤가 똑 같은 착공 일시

임동현 교수 : 카를교 착공 날짜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팰린드롬 (Palindrome)’은 어떤 문자열이나 숫자열을 앞에서부터 읽으나 뒤에서부터 읽으나 그 의미가 똑같은 것을 뜻한다. 카를교의 착공 시각이 ‘1357년 9월 7일 5시 31분’이라는 설이 전해지는데 이는 팰린드롬이 된다. 뒤로 읽어도 같은 숫자가 된다. 이 팰린드롬은 유럽의 비학(祕學-신비한 학문. 천문(天文)이나 역술 등)적 전통에 따르면 영원성과 연결된다. 카를교는 프라하내에서의 동서 지역만을 연결한 것이 아니라 유럽 전반에 걸쳐 서유럽과 동유럽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다리였다.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함께 있는 카를교

임동우 교수: 시기적으로도 보면 고딕 스타일로 지어진 것으로 보이고, 카를교 입구에 서 있는 ‘올드타운 브릿지 타워’도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근데 재미있는 것은 카를교에 30개의 석상이 있는데, 이것들은 나중에 추가가 된 것이다. 살펴보면 석상들은 바로크 양식이다. 프라하라는 곳이 이렇게 시대별 양식들이 많이 적층이 되어 있는데 카를교에서도 고딕 양식, 바로크 양식이 시기별로 잘 보존되어 있다.

 

소원 들어주는 카를교

‘지볶행’ 6화(2024년 4월 4일 방송)에서는 22기 영수와 영숙이 카를교의 동상 앞에서 소원을 비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 동상은 카를교에 있는 30개의 동상 중 가장 유명한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인데 여기서 소원을 빌면 바라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관광객들이 석상을 만지고 소원을 빈다. 이런 전설이 생긴 이유는 보헤미아 국왕 바츨라프 4세가 왕비가 저지른 외도를 알아내기 위해 왕비의 고해 신부였던 네포무크를 불러 고해 내용을 말하라고 했지만 네포무크는 ‘신이 금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한 데서 시작된다. 왕은 신부를 체포하여 고문하고 죽였고 죽음으로 신앙을 지키며 순교한 네포무크는 시성(諡聖)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그가 강물에 던져졌다는 카를교에 와서 동상 아래 동판을 만지며 소원을 빌게 되었다.

 

이티나 : 그 네포무크 동상을 보면 강아지 그림이 있잖아요? 그 그림이 다 황금색이다. 왜냐하면 관광객들이 계속 만지기 때문이다.

 

카를이라는 이름이 많은 프라하

 

프라하와 프라하 주변에는 ‘카를’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건물 또는 장소가 많다. 카를교 뿐만 아니라 동유럽에서 1위 대학으로 손꼽히는 ‘Universita Karlova’라는 이름의 ‘카를 대학교’ 그리고 프라하 근교에 위치한 ‘카를슈테인 성(Hard Karlštejn’)’이 있다. 체코인 이티나는 카를 4세는 체코의 세종대왕 같은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티나 : 체코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카를 4세를 꼽는다. 체코 화폐 중 100 코루나 지폐에도 카를 4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카를 4세는 ‘체코의 세종대왕’이라 말할 수 있다.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또한 이티나는 체코 역사의 시작이라 불리는 ‘대 모라비아 왕국(‘velká morava’)’을 소개하였다. ‘대 모라비아 공국’은 800년 초부터 907년까지 현재 체코의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지역 일대를 지배하다가 907년 경 헝가리 대공국에 의해서 ‘보헤미아 공국’과 ‘헝가리 대공국’으로 분열되었다.

 

이티나 : 우리가 지금 체코라고 하는 지역에는 ‘보헤미아’도 있고 ‘모라비아’라는 지역도 있다. 모라비아 지역에는 9세기 때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임동현 교수: 오늘 날 체코나 슬로바키아나 헝가리 일부가 다 포함되어 있던 지역인가?

이티나 : 그 정도는 아니지만 모라비아 지역과 보헤미아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서쪽의 보헤미아와 동쪽의 모라비아’는 정체성이 조금 다르지만 역사적으로 계속 같은 지역으로 존재하며 오늘 날의 체코가 되었다.

 

카를 4세는 독일어를 썼다

대담 중 홍진호 교수는 ‘과연 카를 4세는 체코에서 지배 민족으로 자리 잡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체코인 이티나는 카를 4세 시기 때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오랜 시간 동안 체코어가 하위 계층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였다고 설명한다. 그 당시 체코에는 언어의 계급이 존재했으며 귀족이나 시민들은 독일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카를4세도 지배 계급으로서 독일어를 사용했다.

 

홍진호 교수: 19세기 후반쯤 되면 체코어도 공용어가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주 빠른 속도로 독일어를 쓰는 비중이 확 줄어버린다. 1차 세계대전 무렵이 되면 유대인들과 독일인을 합쳐서 독일어 사용자가 20% 밑으로 뚝 떨어져 버리고,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독일어 사용자는 주류 언어에서 완전히 밀려난다.

이티나 : 18세기, 19세기에 체코 언어를 살리기 위한 시도가 많았다. 그때 많은 작가, 지식인들이 사전을 만들거나 체코어로 많이 집필을 했다.

 

다음 편은 체코어와 관련하여 문학 이야기기를 하면서 가장 유명한 체코인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쿤데라‘그리고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희곡 작가 카렐차페크 이야기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