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전략 기획부는 설립 중
탄핵 정국으로 여야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지만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국가 소멸 위기 앞에 인구 정책을 적극으로 펼칠 가칭 ‘인구부’ 신설이 그것이다. 정부 여당은 2024년 9월에 인구부 설립 지원을 위한 설립 추진단을 만들었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인구부 신설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7월에 발의한 국민의힘 쪽 법안은 추경호 의원 외 108명이 발의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인데 인구전략기획부장관에게 저출생 예산에 대한 사전심의 권한과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인구위기대응정책을 평가하고 환류하는 등 강력한 기획ㆍ조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더불어민주당도 작년 11월에 김윤 의원 등 14인이 11월에 발의한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골자로 한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신설되는 인구부는 약 30조 원에 달하는 저출생 대응 예산의 사전심의 권한을 갖는다. 중앙 행정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일·가정 양립, 양육·돌봄, 주거 등 관련 사업에 대한 예산요구서를 매년 5월 31일까지 인구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돼 있다.
인구전략기획부 설립 추진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1월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 제공) 예산 사전심의 대상으로 일·가정 양립(4조 4천억 원), 양육·돌봄(15조 3천억 원), 임신·출산(400억 원), 주거(융자 9조 5천억 원) 등 총 29조 3000억 원이 책정됐다.
![제주도의 산후조리비 지원금을 알리는 보도자료. 인구부가 설립되면 이런 지원금도 크게 상향 될 것으로 예상된다.](http://www.solonaranews.com/data/photos/20250206/art_17389887319888_dc7a92.jpg)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이유
유보통합 반대
대한민국 인구 정책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이 예상되는 ‘인구부’. 하지만 올해 안에 법 통과와 설립이 불투명하다. 여야의 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인구전략기획부(인구부) 설치 법안이 합의되지 못하는 이유는 유보통합에 대한 여·야의 첨예한 의견 대립과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유보통합이란 어린이집(0~5세·보건복지부)과 유치원(3~5세·교육부)으로 이원화된 0~5세 보육·교육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정책이다. 2023년 12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지원하는 부처가 교육부로 일원화됐지만, 이후 발의된 ‘유보통합 3법(영유아보육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2024년 6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교육위원회 위원들이 "유보통합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는 무책임한 윤석열 정부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에 구체적인 유보통합 실행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교육청 사이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특히 교육 관련 단체들의 반발은 필사적이다. 2025년 1월 27일 유보이원화연대라는 단체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보통합을 반대하고 "유아교육과 영아보육 체계를 이원화해 상호 전문성과 질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유보통합 예산 특별법을 제정해 필요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달라고도 밝혔다.
유보통합이 되면 보육교사도 교원
유보통합이 이뤄지면 보육교사의 법적지위가 근로자에서 교원이 되며 사학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유치원교사 자격이나 보육교사 자격 중 한가지만 가지고 있는 경우 특별교원양성과정이나, 대학(원) 신편입 과정 중 하나를 선택해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그동안 어린이집에서 일해 온 보육교사들은 새로 자격증을 따야 하는 상황이니 유보통합을 환영만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유치원·어린이집 관계자들도 이해 관계에 따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5조 원 싸움
부처간 갈등도 문제다. 복지부가 맡아온 어린이집 업무는 교육부로 완전히 이관됐지만, 양 부처 간 협업은 쉽지 않다. 복지부 직원 상당수가 의도치 않게 교육부로 소속이 되면서 갈등이 생기고 있다. 국고지원을 둘러싼 재정문제도 심각하다. 정부와 지자체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정부는 유보통합 추진을 위해 교육재정에서 연간 5조 원 이상이 유보통합 재정으로 투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8년에는 88조 7천억 원으로 교부금이 늘어나는데 학령인구 감소 상황에서 재정만 커지고 있으니 이런 교부금 중 5조 원은 유보 통합 재정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지자체의 교육청들은 돈이 깎이니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업보다 한 박자 늦은 정부 대응
인구부 같은 정책 결정력과 실행력이 있는 기관이 없다 보니 민간의 선의조차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출산 직원 가정에 1억 원씩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 2025년 2월 5일 출산 자녀 직원 1인당 1억 원씩 총 28억 원을 지급했는데 지금까지의 출산장려금 지원 규모는 98억 원이나 된다. 연년생으로 두 번째 자녀를 출산한 직원은 누적 2억 원이나 수령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국채보상운동과 금 모으기 캠페인처럼 앞으로도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산을 지원하는 나비효과로 번졌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근로소득으로 지급될 경우 세금 폭탄을 맞기 때문에 증여 형식으로 지급되었다.
그러나 세무 당국이 이를 증여로 인정할지는 미지수고 근로소득으로 분류하여 세금을 매길 경우 1억 원일 경우 3천800만 원 이상, 2억 원일 경우 7천600만 원이나 세금을 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부영 그룹은 100억 원 가까이 저출산 문제를 위해 돈을 썼지만 안타깝게도 이 회사가 정부로부터 받은 세제 혜택은 없었다. 국가의 위기를 기업이 솔선수범하여 돈을 지불하겠다는데 이런 선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재정부도 부영의 출산장려금 지급 소식이 나온 3일 후 세제 혜택 방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기업들이 상여금을 증여로 악용할 소지도 있기 때문에 출산장려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