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4일에 발행된 입법조사처 현안 분석에서 허민숙 조사관은 교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 과제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허민숙 조사관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심각한 피해 현실, 한 해 138명 사망
한국여성의 전화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138명, 살인미수 피해자는 311명으로 총 449명이 ‘친밀한 관계’ 배우자 및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 돌아왔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이 중 통제 피해 상황도 심각한데, 폭력 피해를 5개 유형으로 구분한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현재의 배우자 또는 파트너에 의해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피해자의 87.7%가 통제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하였다. 이는 신체적 폭력 또는 성적 폭력 피해율보다 높다.
해외의 경우 신체적 폭력이 없는 통제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하고 있거나,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있다. ‘통제 범죄’가 인정되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5년, 호주에서는 7~14년, 스코틀랜드에서는 최장 14년 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국은 근거 법률의 미비함으로 피해자의 재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단순 폭행보다 위험한 강압적 통제의 위험
교제폭력 가해자 처분 현황을 보면 형사입건 된 가해자 중 구속수사를 받는 비율은 매우 낮으며 2017년 3.5%였던 구속율이 2023년 2.2%로 오히려 감소했다. 강압적 통제와 친밀한 관계의 폭력 중, 신체적 폭력의 경우 폭력 증거가 분명하여 피해자 보호를 쉽게 할 수 있다. 신체적 폭력 피해는 가장 분명한 폭력 피해의 증거다. 골절과 자상, 출혈이 있는 피해자라면 쉽게 피해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 폭력 피해의 수위가 높을수록 가해자의 잔인성이 확인되고 피해자는 보호받을 자격을 손쉽게 부여받는다. 그러나 더 위험한 학대인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 보호를 어렵게 한다. 상대방의 일상에 대한 간섭과 규제, 모욕주고 비난하기, 행동의 자유를 빼앗고, 가족 및 지인 등으로부터 교제 상대를 고립시킨다.
권력 관계가 치우친 경우 결별 이후 살해될 수 있음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통제 행위는 피해자 살해 및 자살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다른 유형의 살인과 달리 ‘결별’ 이후에 피해자를 살해한다. 특히 둘 사이의 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한쪽에 치우쳐 있고 통제 성향을 보일 경우, 피해자가 살인 등 극단적 위험에 처할 우려가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다시 말하여, 상대를 동등한 주체로 인식하기보다는 소유물, 통제와 조종의 대상으로 여기는 가해자의 특성은 그와 같은 통제를 ‘거절’하는 시도인 ‘결별’ 과정에서 상대를 살해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피해자를 자살하게 만든다. 이들의 자살 시도율은 일반 여성의 5배나 높다.
통제 행위의 처벌,영국-동거 아니어도 가정 폭력법으로 처벌
영국에서 친밀한 관계의 폭력은 「가정폭력법」(Domestic Abuse Act 2021)의 적용을 받는다. 법률은 친밀한 관계를 법률혼, 시민동반자, 결혼 예정 관계에 있는 자는 물론, ‘서로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또는 있었던 자’로 규정한다. 특히 2021년 법률 개정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정의하는 데 있어 ‘동거(living together)’ 요건을 삭제하였다. 서로 교제하는 사이라면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된다.
신체적 피해 없어도 5년 징역
한편, 2015년 「중범죄법」(Serious Crime Act) 제76조 개정을 통해 신체적 피해가 없는 통제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였다. 법률의 적용 대상자는 친밀한 관계 또는 가족관계이다. 이때 친밀한 관계는 ‘개인적으로 연관된(personally connected)’으로 표현되는데, 서로 친밀한 관계, 함께 사는 가족구성원, 또는 이전에 서로 친밀한 관계였던 자를 말한다. 법률은 최소 2회 이상의 사건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 있는 피해자에게 곧 폭력이 사용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때 범죄 행위가 발생했다고 본다. 범죄가 인정되는 경우 최장 5년의 징역형, 벌금형에 처한다.
호주- 311건의 사망 사건 검토 후 입법, 성관계는 친밀성 판단의 기준 안돼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의회는 2022년 「강압적 통제법」(Crimes Legislation Amendment(Coercive Control) Act 2022)을 통과시켜 현재 또는 이전 친밀한 관계인 자에 대한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하였고 법률은 2024년 7월 1일 시행했다. 뉴사우스웨일즈주 의회가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한 것은 8년의 기간(2010~2018) 동안 발생한 311건의 친밀한 관계 폭력 사망 사건 검토 결과에 따른 것이다. 면밀한 조사에 따르면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의 82%가 정서·심리 학대 피해자, 63%가 통제 피해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법률은 학대행위를 정의하는 데 있어 친밀한 자에 대해 강압·강요하는 행위를 하는 것, 모욕, 경멸, 수치심을 주는 행위, 활동·타인과의 의사소통 및 교류 등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것, 친구·가족으로부터 고립시키는 행위, 일상에 대한 통제 및 규제와 같은 개인 자유의 찬탈 행위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반려동물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행위, 반려동물을 위협 수단으로 삼는 행위도 학대 행위에 포함하였다.
해당 법률이 적용되는 대상인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란 법률혼 관계에 있는 자, 사실혼 관계에 있는 자, 또는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혹은 있었던 자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친밀성 판단에 있어 성적인 관계가 있었던 사이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강압적 통제 범죄 행위가 확인되면 법률에 따라 최장 7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입법과제 – 통제 행위의 범죄화와 반의사불벌죄 배제가 우선
첫째,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교제 폭력 방지 혹은 처벌에 관한 법률은 먼저 친밀한 관계에서의 ‘통제 행위’를 범죄화하는 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배우자/파트너 폭력 피해자 중 상당수가 통제피해를 경험하고 있고, 통제피해의 부정적 효과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통제와 강압 행위를 범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교제폭력 사망 사건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극심한 통제 행위에 시달렸고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였음에도 제 때 도움받지 못하고, 사망한 후에야 가해자가 스토킹 혐의로 입건되는 등 피해자 보호에 큰 공백이 있다는 점, 통제 행위가 피해자 살해의 가장 큰 위험요인 중 하나였지만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인지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가해자의 통제 행위를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고, 적절한 공권력 개입이 이루어져야 피해자 사망이라는 참극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친밀성’이라는 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가해자 처벌을 규율하기 위해서는 ‘반의사 불벌죄’ 배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교제관계가 법률의 적용 대상으로 포괄될지라도 범죄 신고 시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을 결정하게 하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해자가 처벌불원을 할 우려가 높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 또는 회유함으로써 손쉽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가해자는 수사기관의 개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제21대 국회는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고자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반의사불벌 조항을 전격 폐지하였다는 점을 참조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옷 입지 마라’ 협박죄로 처벌하기 어려워
기존 법률로 처벌할 수 있는데 별도의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과잉 입법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다. 별도의 입법이 필요한 이유는 교제 폭력을 기존 형법의 협박죄로 처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압적 통제’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두고, 혹자는 「형법」에서 규율하는 ‘협박죄’로 상대를 위협하고 두려움에 떨게 한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다. 판례는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만한 해악의 고지”를 협박죄 성립 요건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통제 피해 사실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실제 판례에서 인정받은 '해악 고지'의 공통점은 예컨대 ‘불을 지르겠다’, ‘죽여 버리겠다’, ‘신체나 사회적 지위에 위해를 가하겠다’,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지게 하겠다’, ‘부실공사를 제보하겠다’ 등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명확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런 식으로 옷 입지 마라’,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 사진 찍어 보내라’, ‘영상 통화로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달라’, ‘그 모임에 나가지 마라’, ‘누구와 카톡을 주고받았는지 확인해야겠다’, ‘다른 사람과 만나지도 말고 대화도 말라’가 해악의 고지인 협박죄로 인정받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
교제 및 배우자 관계에서 폭력을 ‘사적인 일’로 경미하게 치부하며, 중재와 화해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낡은 관행이 오늘날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 '친밀한 관계 폭력'의 본성을 제대로 반영하는 법률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