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와 국회 계엄 해제 결의 후 촉발된 대규모 탄핵 시위가 1차 국회 탄핵 표결일인 12월 7일부터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많은 MZ 세대들도 대통령 탄핵 시위에 참여하면서 2016년 말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위 때와 확연히 다른 시위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7일, 8일에 국회 앞 거리와 전국에 등장한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다양한 깃발은 8년 전과 눈에 띄게 달라진 시위 문화를 보여준다.


스타워즈 저항군 서울 지부
7일 국회 인근 ‘스타워즈 저항군 서울 지부 깃발’이 나부겼다. reddit 등 해외 SNS에도 소개되었고 국내 언론에서도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해학 넘치는 시위 깃발이다. 영화 스타워즈는 1인 독재 체제로 움직이는 제국군과 이에 저항하는 은하연합 공화제 지지파의 전쟁이다. 영화에서는 공화파를 선한 집단으로 묘사하며, 광선검을 사용하는 주인공들인 제다이 역시 공화파의 일원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에 한글로 씌어진 스타워즈 저항군 깃발이 등장한 것은 풍자이면서 강한 탄핵 메시지를 담고 있어 시위 참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천 작가의 '하오문(下汚門)의 절대검신'
이외에도 각종 덕후들의 깃발이 7일~8일 시위 현장에 나부끼면서 국회 앞 탄핵 집회는 대한민국 덕후 문화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 하오문 (下汚門) 은 무협물에서 흔히 묘사되는 사파 계열의 문파이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들이 모여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무력은 흔히 최하위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생존력과 정보력 등이 뛰어나 사파 모임 중 존재감은 큰 세력이다. 하오문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소설은 정천 작가의 ‘하오문의 절대검심’이라는 웹 무협 소설로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 542만 3천 회 조회를 기록하고 있다.

TK장녀 모임
7일 대구 지역 집회에서 화제가 된 깃발은 ‘부모님 몰래 시위 나온 TK 장녀 연합’ 깃발이다. 국민의힘 지지 기반이 대구 경북이라 현 정부에 대한 지지자인 부모 뜻에 거스는 행동일 수도 있는 집회 참석을 애교 있는 문구로 표현했다.











덕후에게 덕질만 걱정할 자유를
이 외에도 사회관계망 'X'에는 "개빡친 퀴어 깃발", 얼어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줄인 "얼죽아 연합", 얼어죽어도 코트 입는 사람을 비꼰 "얼죽코"를 시위 깃발 사진이 올라와 있다. 강아지 발냄새연구회, 걷는 버섯 동호회, 전국 눈사람 안아주기 운동 본부, 우정팔찌연합이 있는가 하면 1971년에 시리즈가 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 가면 라이더에서 착안한 '이대로 가면 라이더 연합' 깃발도 있다. 여러 게시물 중 이들이 시위에 참가한 이유 중 하나를 엿볼 수 있는 깃발이 있었는데 '응원봉 연대'의 문구가 그것이다.
"덕후에게 덕질만 걱정할 자유를"

MZ들이 바꾸는 시위 문화
지금 시위는 8년 전 퇴진, 처단,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형을 불태우는 섬뜩한 분노가 태반이었던 시위 현장의 분위기와 매우 달라진 모습이다. 현장의 시위 음악도 노동 운동 가요를 벗어나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등 유행가를 개사한 곡이 등장했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개사한 가수 백자의 영상은 6일 전에 업로드되어 11일 현재 86만 명이 조회 중이다. (영상 바로 보기)
이런 노래에 맞춰 20~30대 청년들은 응원봉을 흔드는 등 세련된 모습을 보였는데 보이그룹 ‘NCT’의 직육면체 응원봉, 다이아몬드 모양의 ‘샤이니’ 응원봉, 사슴뿔을 형상화한 '오마이걸' 응원봉 등 모양도 다양했다. 바람에 꺼지는 불편한 촛불을 편리한 과학기술로 대체한 것.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경찰 추산 15만 명이 운집했는데 20~30대 젊은 참가자가 많았다. 집회 현장에서는 아직도 고전적인 노동 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 ‘단결투쟁가’가 불려졌지만 젊은 세대는 로제의 ‘아파트’, 2Ne1의 ‘내가 제일 잘나가’ 등을 불렀다.
12월 14일 국회의 탄핵 2차 투표 때에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대규모로 집회에 참석한다고 고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밈처럼 확산되고 있는 시위 깃발은 더 많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